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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강타는 잊어라! (KBS 저널)

혀니나라 2018. 6. 6. 19:36

출처 :  KBS Journal, 2005.05



지금까지의 강타는 잊어라!  

아이돌 스타였던 강타가 <러브홀릭>을 통해 돌아왔다. 그러나 그에게는 통과해야 할 여러 관문이 남아 있다. 아직 벗지 못한 소년 이미지를 털어버리고 ‘어른’이 되는 것, 그리고 검증 받지 못한 연기력을 증명해 배우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 관문을 통과해야만 그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 한발 다가갈 수 있지만 실패의 가능성도 높다. 두려움 없이 당당히 걸어가는 그를 만나본다.

아이돌 스타의 아이콘 ‘H.O.T’와 강타

“안녕하세요.”전화기를 타고 흐르는 음성은 곧 바로 1996년 풍경의 하나로 회귀시킨다. 그것은 H.O.T를 어떻게 읽느냐를 놓고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핫’으로 읽는 사람들은 구세대, ‘에이치오티’로 발음하는 사람은 신세대로 취급되는, H.O.T는 신·구세대를 가르는 기준이었다. 그만큼 가요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하나의 계기였고 음악 흐름을 전환시킨 거대한 물줄기였고 대중의 시선마저 변화시킨 사회적 신드롬이었다.

10대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왕성한 소구력은 다섯 명의 10대 아이돌 스타로 구성된 H.O.T를 하나의 신화와 전설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H.O.T는 10대 아이돌 그룹들의 범람을 선두에서 이끌며 대중가요의 방향타 역할을 했다. 한반도를 너머 중국 대륙에서 거세게 일던 한류라는 강진의 진앙지이기도 했다. 한 시대의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우뚝 선 H.O.T는 팬들의 거센 항의와 통곡 속에서 2001년 그룹 해체로 그 시대를 마감했다.

전화기의 목소리는 다름아닌 H.O.T의 멤버 중에서 인기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고, 10대들이 보내는 열정의 온도를 알 수 없을 정도였던 강타다. 한 시대의 음악의 흐름을 바꾼 아이돌 스타, 강타가 이제 전혀 다른 영역으로 그의 스타성을 검증받으려는 순간에 서 있다.

가수 강타를 넘어 연기자 안칠현으로

그 순간은 우리 대중문화계에도 중요한 의미이자, 강타라는 스타 개인에게도 연예인 인생의 큰 전환점이다. 그 전환점의 순간에 만난 강타는 안칠현이 되려 한다. 단순한 본명의 복귀가 아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의미와 도전, 그리고 변화들이 도사리고 있다.

의미와 도전, 그리고 변화를 수반한 가수 강타의 안칠현으로의 복귀는 5월 2일 KBS 2TV의 월화 미니시리즈 <러브홀릭>이다. 가수를 넘어 연기자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시험대가 바로 <러브홀릭>인 것이다. <러브홀릭>은 강타에게 단순한 시험대가 아니다. 그것은 그를 스타로 떠오르게 했고 인기 절정의 가수로 활동을 가능하게 했던, 하지만 동시에 그의 한계로 작용하는 10대 아이돌 스타 이미지의 견고한 성(城)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하고 단순한 가수 출신 연기자 중 한 사람의 등장이 아닌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진전한 언어의 내용을 담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타는 지금 또 다른 비상을 꿈꾼다.
  10대들의 우상인 아이돌 스타에서 영혼이 전해지는 연기자로.


전화를 통한 만남과 대면(對面)을 통한 만남에서 그는 전혀 의외의 모습이었다.
가수에서 연기자로의 영역 확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대립과 충돌을 반복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강타는“제 음악팬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좋은 이미지를 주고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연기 활동을 결심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만남의 상대가 의외라는 느낌을 주는 그 담담한 말투에는 이미 연기자로서 가져야 할 자세의 숙지와, 그리고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가 곳곳에 배어 있다. 선글라스를 통과해 전달되는 강렬한 눈빛은 <러브홀릭>에서 그가 표출할 서강욱은 일상화하려는 몸짓의 하나를 드러내는 단초였다. 그가 드러낼‘서강욱’을 너무 일찍 인생을 포기해 양아치 같은 고등학생으로 살지만 우연히 만난 여교사와 운명적인 사랑을 하는, 내면의 심리와 외형의 변화의 폭이 까다로운 캐릭터이다. 연기 초보자로서는 무리일 수 있는 배역이지만 매력적이다.

강타, 아니 안칠현은“강욱이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따뜻하고 거친 양면을 가진 매력적인 친구이지요. 제 연기력으로는 강욱을 드러내기에는 미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출연진과 제작진과의 호흡이 생명이기 때문에 상대 배역인 김민선 씨를 비롯한 여러 연기자와 조화에 최선을 다한다면 강욱이라는 캐릭터가 브라운관 너머 시청자에게 자연스러움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이 말을 하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진솔한 마음으로 연기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안칠현이라는 본명을 쓰기로 했습니다.”

풋풋한소년, 진중한 청년이 되다

그의 진지한 언어의 나열들을 살펴보면서 떠오르는 것이 애드가 모랭의‘스타’에 나오는‘신인은 연기나 노래를 통해 육체를 보여주지만 스타는 영혼을 보여준다.’는 귀절이다. 연기에 진솔한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단순한 육체의 전시에 불과하다. 안칠현은 연기를 통해 영혼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영혼을 브라운관 너머로 투과시키기 위해서는 그가 해결해야 할 난제가 있다. 우선 신인이지만 브라운관에 선 순간 그는 프로가 돼야 하고 시청자는 프로로서의 연기를 본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거기에 강타라는 스타성에 대한 기대는 남다르다. 그래서 연기자로서의 안칠현은 카메라 동선의 움직임에서부터 캐릭터를 철저히 자기 것으로 착상시키려는 대사, 몸짓 등 세밀하고 농밀한 연기력을 다져야 한다. 이것만이 연기자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가 어설픈 연기력으로 드라마의 완성도도 저하시키고 가수로서 상품성마저 추락시키는 일부 가수 출신 연기자의 전철을 피하면서 또 다른 스타 연기자 안칠현으로 비상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다.

“부담스러워요. 분명 연기자로 활동을 하는 가수들에 대한 엄존하는 비판과 비난의 시선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선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연출자나 선배 연기자의 조언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요.”

그가 만약 명성과 인기, 성공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브라운관의 연기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연기라는 분위기속에서 진정으로 그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다면 <러브홀릭>의 성공은 보장되고 안칠현이라는 스타 연기자의 탄생을 낳을 수 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러브홀릭>의 촬영장으로 서둘러 나가는 안칠현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마디 던져줬다. “시대는 스타를 원하지만 역사는 배우를 기억한다.”고. 정말 훗날 가요사에서 H.O.T의 강타를 기억할 수 있듯 한국 드라마사에서‘안칠현’이라는 배우를 떠올릴 수 있도록 그의 연기자로서 첫걸음인 <러브홀릭>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에서 던진 한마디였다.

글 | 배국남(대중문화 평론가) 사진 | 남궁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