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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타, 입대 전 가슴으로 말한 서른 살 모노극 외 (연합뉴스)

혀니나라 2018. 6. 9. 14:35

출처 : 연합뉴스(www.yonhapnews.co.kr)
          2008.03.24 09:35


강타, 입대 전 가슴으로 말한 서른 살 모노극

"가락시장서 생선 배달, 오토바이 절도 오해도…"

4월1일 입대 전, 3년 만의 정규 음반 발표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제 이름, 원래 안희성이었어요. 왜 안칠현(安七炫)이 된지 아세요?"

입대 열흘 전 만난 강타(본명 안칠현ㆍ29)는 되레 질문을 던졌다.

우리 나이로 서른 살, 1996년 그룹 H.O.T로 데뷔해 스타생활 12년. 팬들의 환호를 뒤로 하고 딱딱한 군화에 익숙함을 느끼기 전, 긴장과 여유가 교차하는 시간이어서일까.

"저, 이런 얘기하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강타는 스타가 되고도 개그 소재로 놀림받았던 이름 얘기로 소박한 독백을 시작했다. 입대로 인한 2년간의 쉼표 전, 짧은 메모를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를 터다.

"누나(33), 형(32), 저 삼남매인데 제 위에 또 다른 형이 있었어요. 어머니가 서울 올라와서 힘들게 장사하시다 자연유산을 하셨죠. 이후 절 가졌는데 잃은 형에 대한 죄책감에 무척 잘해주셨대요. 아버지가 시골에 안희성이란 이름을 받으러 간 사이, 한 작명가 할아버지가 돈을 안 받더라도 제 이름을 짓겠다고 하시더래요."

그렇게 얻은 이름, 안칠현. '일곱 칠(七)'에 '불꽃 현(炫)'으로 남들이 우러러볼 성공을 일곱 번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촌스러운' 이름 때문에 싸움도 참 많이 했다. 다행인 건 이 이름이 중국에선 '안치셴'으로 불리는데 한국으로 치면 '준' '혁' '민' 등 멋진 남자 이름이라는 것.

강타의 얘기는 30년을 두루 훑기 시작했다. 페달을 가열차게 밟자 가속도가 붙었다.

서울 뚝섬에서 태어난 강타의 본적은 경북 예천군 보문면. 부모님은 이 지역 이웃마을 출신이다. 강타가 두세 살 때 산 적도 있지만 기억나진 않는다. 부모님이 옷가게를 하던 강동구 길동에서 오래 살았고 이후 옷가게로 성공한 아버지가 건축업과 공인중개업을 시작, 데뷔 5~6년 전 송파구 오금동으로 이사했다.

"송파구에는 '끼'있는 애들이 정말 많았어요. 이 지역 출신 연예인으론 문희준, 이재원, MC몽, 전진 등이 있죠. 이곳 아이들은 서로 춤과 노래 배틀을 벌이며 문화를 형성했어요. 때론 불량학생도 있었지만."

중학교 시절 친형 덕택에 건스 앤 로지즈, 메탈리카, 메가데스 등 록음악을 접했고 팝만이 음악인 줄 알았다. 이후 흑인 음악을 들으며 힙합, 랩 다음엔 춤에도 관심을 가졌다. 친구들과 카세트덱을 들고 롯데월드 인근과 거리를 쏘다니며 춤 배틀을 벌였다. 이즈음 기타 학원에 다니면서 곡을 쓰고 싶었다.

이때만 해도 중학생이 음악과 춤에 빠져 가수의 꿈을 키우는 건 어른들의 시선에 위태로운 일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캐스팅 매니저로부터 명함을 받았다. 처음 공개하지만 베이비복스를 배출한 DR뮤직을 찾아간 적도 있다. 명함 받은 지 두세 달 후 SM을 방문했고 연습생이 됐다.

"(가수 겸 작곡가) 유영진 형이 제 노래를 듣고 이수만 선생님이 얼굴을 보셨죠. 제가 사납고 불성실해 보여서 고민하셨대요. 장우혁, 토니안, 이재원은 단번에 캐스팅됐는데(웃음). 1년간 연습생으로 춤과 노래 연습을 했고 영진이 형 스케줄 백댄서도 했어요. 한번은 영진이 형 차 뒷좌석에서 포 이그잼플의 노래를 따라 불렀는데 다시 불러보라고 하셨죠. 그 길로 연습생에서 H.O.T 멤버로 전격 발탁됐어요."

H.O.T 데뷔 반년 전인 고2 때, 마지막 멤버로 전속 계약이 성사됐다. 처음엔 강타의 진로에 아버지가 반기를 들었다. 음악을 하면 배고플 것이란 선입견에다 성인이 된 후 하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남들 집안처럼 엄청난 반대는 안 하셨어요. 부모님은 평소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 단지 못 도와준다. 원하는 대로 강요하지 않을 테니 네 인생은 알아서 살라'는 지론이셨죠."

사실 부모의 꼿꼿한 교육 철학으로 인해 강타의 사회 경험은 무척 일렀다. 고1 때까지 하루 용돈이 100원, 한 달에 3천 원이 전부. 중2부터 고1까지 신문과 우유ㆍ중국집ㆍ치킨집 배달, 전단지 배포, 공사장 일용직 등 별별 아르바이트를 거쳤다.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새벽 일을 한 적도 있어요. 각지에서 해산물이 올라오면 경매를 벌이는데 낙찰된 아줌마 가게에 생선을 날라주는 거였죠. 비린내도 심했고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고1 겨울방학 때 많게는 아르바이트로 120만 원까지 벌어본 적도 있어요."

부모 원망도 했을 법. 오히려 새벽 3~4시에 귀가해도 '패스'되는 자신을 친구들이 부러워했다고 한다. 어린 마음에 '부모님은 왜 내게 무관심할까'가 아니라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체격도 크고 남자다우신 아버지는 흡연, 음주에 대해서도 사고가 개방적이셨어요. 싸움을 해도 좋지만 모두 어릴 때 겪으라셨죠. 그래야 성인이 돼서 안 한다고요. 그러나 어렸을 때 배운 도둑질은 커서도 한다며 남의 물건에만 손대지 말라셨어요."

그러나 남의 물건에 손을 댔다는 오해로 부모의 가슴을 멍들게 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연예계에서 건실한 스타로 소문난 강타이기에 갑절로 솔직하게 다가온 이야기. 한마디로 오토바이 절도 사건인데 어린시절 남자들 사이의 의리를 지키다가 벌어진 일이다.

강타의 친한 친구 A가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 훔쳤는데, 그 지역 불량학생 B가 경찰에 걸리면 책임질 테니 타겠다며 뺏어갔던 것. 그런데 B에게서 한 바퀴만 빌려탄 강타가 경찰에 딱 걸리고 말았다.

"파출소 분들이 모두 저를 알았어요. B와 저를 보면서 '평생 콩밥이야'라고 하셨죠. B는 오토바이를 훔친 제 친구 A의 이름을 대겠다고 하길래 의리상 제가 뒤집어쓰기로 한 겁니다. 그런데 오토바이가 파손돼 특수절도가 적용된다길래 어머니는 울고불고 난리가 나셨죠. 유치장에 열흘 있고 고등학교도 정학당했어요. 다행히 경찰이 정황이 안 맞는다며 제가 훔친 게 아니란 걸 확인하고서야 사건이 끝났죠.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라던 아버지의 철칙을 본의 아니게 어긴 셈이 됐죠."

강타는 유년기, 청소년기를 돌고 돌아 2001년 해체된 H.O.T 시절의 에피소드를 다시 꺼냈다. 금방 스타가 될 줄 알았다는 것, 데뷔 전 목표가 '가요 톱 10' 10위권이었는데 음반 나온 지 3주 만에 '전사의 후예'로 이 꿈을 이뤘다는 것, 그러나 한 달 만에 '전사의 후예'가 사이프러스 힐의 노래와 표절 시비가 일어 활동을 접었고 2주 만에 '캔디'로 나와 1등을 차지했다는 것 등.

신체검사 2등급을 받아 4월1일 현역으로 입대해 제대할 시점은 2010년 4월. 31살이 된다. 결혼과 일 모두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나이다.

1년반 전 군입대로 고민하다 여자친구와 가슴 아픈 이별을 경험했다.

"그 친구와는 라이프 스타일이 잘 맞아서 결혼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TV만 대여섯 시간 틀어놓아도 웃고 떠들며 잘 맞는 친구지요. 놀 때는 놀고 일할 때는 일하는 스타일도 같았고요. 제대 후에는 더 철이 들겠죠. 활동 중 저의 공백기를 안정적으로 채워주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

SM의 대주주답게 중국 시장에 대한 사업적인 마인드도 풀어놓는다. 올해 베이징 올림픽 이후 열릴 중국 시장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것. 후배들이 편하게 활동할 여건을 마련하겠다고도 한다.

"군 미필자는 외국 스케줄을 소화할 때마다 절차가 복잡해요. 제대하면 아무 때나 나갈 수 있으니 참 좋아요. 군 복무를 마치고 그 시장(중국)에 다시 뛰어들 겁니다."

강타는 입대를 3주가량 남기고 3년 만의 정규 음반인 '이터니티(Eternity)-영원(永遠)'을 발표했다. 타이틀곡은 자작곡인 '어느 날 가슴이 말했다'. 오늘, 강타는 가슴으로 말했다. 그리고 여유로운 뒷모습으로 자리를 떴다.

mimi@yna.co.kr


강타, 입대 전 부모님 향한 감사의 편지

"자식이 번 돈 못 쓰시던 부모님, 호강시켜 드릴게요"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아버지(59)ㆍ어머니(58), 막내 (안)칠현(강타ㆍ29)입니다. 4월1일 입대를 앞두고 새삼 두 분을 떠올리니 가슴부터 먹먹해집니다.

석 달간 외국 갔다 집에 돌아와도 '왔나, 니가 얼마 만에 오는 거고, 밥 무라'라는 아버지처럼 무뚝뚝하고 살가운 말 한마디 못하는 아들인데, 글로나마 제 진심을 담아보고 싶습니다.

집안에서 관심 많이 받는 아들이고 싶었고 늘 그랬습니다. 저의 특수한 직업 때문에 가족 외식 때도 '칠현이 스케줄, 칠현이가 편한 자리'를 고려하며 사소한 결정 기준까지 제게 두셨으니까요.

머리가 커버린 아들이 지금도 유일하게 무서워 하는 분 아버지. 그 넓고 단단한 가슴을 아프게 한 적이 두 번 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H.O.T 5집 시절 제가 음주운전 사건을 냈을 때. 전 아이돌 가수였고 사회적인 이슈가 됐죠. 팬들은 '경찰서 웹사이트에 음주운전이 문제냐, 왜 죄인 취급하느냐, 사람을 죽였느냐'고 항의성 글을 올렸는데 마치 저로 인해 청소년의 윤리 개념이 무너지는 역효과가 났습니다. H.O.T가 사회적으로 집중포화를 맞았고 전 한 달을 밥도 못 먹고 집에서 보냈는데, 이때 가슴 아파하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 싸움도 많이 했고 경찰서에서 집으로 전화가 오기도 했죠. 기억나세요? 중학교 때 저와 싸운 친구가 다쳐 그쪽 부모님이 저를 고소하겠다고 한 일. 부자 동네에 사는 그 친구 부모가 '없이 자라서 애들이 억세네'라고 했죠. 아버지는 저와 친구들 앞에선 '애들 싸움에 심하다'고 말했지만, 우리가 자리를 뜨자 그 자존심 센 아버지는 무릎 꿇고 사죄하셨죠. 문틈으로 본 제 마음은 무너졌습니다.

제가 벌어오는 돈 한푼 생활비에 안 보태시던 어머니. 아들이 힘들게 번 돈이 아깝다고 차곡차곡 재테크를 해주셨죠. 오히려 '어려운 친척을 도와주는 게 어떻냐'고는 물어도 당신들은 쓰지 못하셨습니다. 그 사랑 덕택에 '이건 돈이 되니까'란 생각으로 일을 선택한 적은 가슴에 손을 얹고 없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속으로 걱정 많이 하시죠? 제가 입대해 적응 못할까봐…. 나이 들어 어린 친구들과 입대하지, 유명인이란 타이틀 달고 가지, 부모님이 생각하는 아들은 무뚝뚝하고 고집 세지.

그런데 저요, 부모님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 튀어나온 부분도 매끄럽게 깎아낼 줄 아는 아들이니 그런 걱정은 전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진부한 말이지만 정말, 부모님 호강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2년간 건강하게, 성실하게 복무하겠습니다. 참, 올해 설날 누나네 둘째가 태어났을 때 무척 기뻐하셨죠. 훗날 결혼해 제 '새끼'를 낳아도 예뻐해주실 거죠? 하하.

부모님의 건강만 바랄 뿐입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2008년 3월 새 봄에 입대를 앞둔 막내가 드립니다.

mim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