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쎄씨(Ceci)
2002.09
Tour in Humanism
KANGTA
IN
CUBA
유화 속의 거리, 쿠바 음악과 헤밍웨이,
체 게바라의 휴머니즘...낭만의 그곳
지구의 반바퀴를 돌아 알 수 없는 땅, 쿠바에 머물다.
유럽과 라틴의 낭만이 공존하는 아바나의 거리와 헤밍웨이의 카리브해,
검은 피부, 새하얀 눈동자에 인간적 따스함을 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낭만적인 음악, "쿠바에는 국민가수 없답니다.
국민 모두가 가수니까요"라며 그들의 음악에 심취한 강타와 함께,
마음 가득 휴머니즘에 휩싸이다. Hola, Havana!
에디터/ 홍미란 기자
People...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에 서다.
살아있는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진 건물들과
<노인과 바다>가 쓰여진 카리브해가 흐른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과
영화 <리빙 하바나>의 낭만이 펼쳐졌던 곳.
하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 반하게 된 것,
그것은 오염 없는 사고와 리얼리티를 향해 있는 쿠바인들의 정신.
맑은 눈을 지닌 그들에 둘러싸여 보낸 하루하루,
그것은 고향에서의 나날들이었다.
Music...
집집마다 문이 열려있다. 열린 골목골목마다 정겨운 시람들,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한가롭게 이웃과 수다를 즐기며 구석구석 맘보에서 차차차,
살사에 이르는 다양한 리듬이 펼쳐진다.
모두 이곳 쿠바에서 탄생한 음악으로 우리에겐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통해 다가왔다.
'환영받는 사교 클럽'이란 뜻을 담은 이 제목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밴드 이름이자 그들의 앨범명이다.
수록된 14곡 중 '아모르 데 로카 후벤투드(젊음, 그 미친듯한 사랑)이란 노래는
쿠바 클럽 최고의 신청곡. 캐러비안 지역의 낙천적인 색채,
재즈 스타일의 분위기와 감성적이면서도 경쾌한 멜로디 등이 선명하게 돋보인다.
결국 처음 예상했던 외세의 오랜 지배와
치열한 혁명의 흔적 대신 음악과 낭만으로 가득찬 쿠바였다.
Thinking...
거의 이틀을 꼬박 날아와 아바나에 첫발을 내디딘 지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해가 도시를 비추는 아침시간이면 지금 발끝으로 펼쳐진
아바나 최초의 메인 스트리트 프라도(PLADO) 거리를 거닐었다.
문을 열 때부터 어둠이 내릴 때까지 헤밍웨이가 찾았던
카페 '산 미겔(San Miguel)'에서 카리브해를 바라보면
금세 메모장을 찾게 된다. 허전한 밤이면 골목마다 열린 클럽에 들렀다.
한국에서 혼자 만들어 먹던 칵테일과는 차원이 다른
'바카디 럼'의 깊은 향에 취하다 보면 누구나 친구가 된다.
어디든 낯선 동양인에게 배려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의 따뜻함과,
콩을 으깨 만든 소스에 치킨과 쌀이 함께 어우러진
쿠바 전통 식사까지 온통 날 사로잡는 것 투성이다.
사실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해도 아직 남아 있는 녹음 스케줄과
눈앞에 다가온 컴백 콘서트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지금은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아직 2년째 혼자지만
다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함께 다시 들르고 싶은 곳.
그때 찾은 이곳은 또 어떤 감동으로 다가올까...
Revolution...
'진실에 대한 광적인 애정' '휴머니즘의 전도사' 라는 격찬으로 추앙받는 인물,
체 게바라(Che Guevara), 쿠바라는 단어보다 익숙한 그의 이름은 이곳 현지에서 한결 뜨겁게 다가온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평범한 의사였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본 서민층의 생활에 분노했고,
멕시코에 머무르는 동안 F. 카스트로와 사귀어 쿠바 혁명에 참가하게 되었다.
혁명이 성공한 뒤 '쿠바의 두뇌'라 불리며 중요한 요직에 앉았지만 1965년 3월 홀연히 사라졌다.
사망설이 파다하였으나, 그는 새로운 전쟁터로 달려갔던 것.
그렇게 볼리비아의 산악지대에서 게릴라부대를 조직하며 혁명을 꿈꾸다 1967년 총살당했다.
그가 볼리비아로 떠나기 전 카스트로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는 전세계 추종자들의 가슴에 깊게 새겨져있다.
'나는 경이로운 세월을 살았고, 미사일의 위기가 계속되는 최근에까지 자네 곁에서
우리 인민과 함께 한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꼈네...지구상의 다른 땅들이 나의 미천한 힘을 요구하는군.
이제 우리가 작별할 시간이 온 게지...내 정신의 한 쪽을 남겨 두겠네..
오직 이상형의 쿠바만을 기억 하겠네. 그래서 다른 하늘아래 내 최후의 시간이 도래한다면,
내 마지막 생각은 쿠바 인민들에게, 자네에게 향할 걸세. 내가 어디에 있든 언제나
쿠바 혁명가의 책임을 완수할 것이며, 또 그렇게 행동할 것이네.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
-뜨거운 혁명의 열기로 얼싸안으며, Che
Memories...
아바나의 중심가 올드아바나 거리 위로 석양이 내린다.
그때쯤 다시 골목으로 들어서는 이유.
한낮 동안 왁자지껄하던 아이들의 달음질도, 비쩍말라버린 손가락으로
오래된 기타를 두드리는 노인의 모습도 하나 둘 사라지고
혼자 남게 되므로, 그리고 저 멀리 골목 끝까지
사라져가는 태양빛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밤이 찾아온다. 낯선 곳에서의 낯선 순간,
하지만 오히려 편안하게 다가온다.
지난해 11월, 생일파티에 즈음하여 처음으로 홀로 준비한 콘서트 무대가 떠올랐다.
콘서트 전날 리허설을 마친 뒤 세션이 모두 내려온 무대를 지켜보면서
문득 다리가 후들거렸던 기억.
솔로 데뷔 첫무대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무거운 기분 그리고 질문 하나,
'나의 노래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다시 2집을 세상에 펼쳐놓으려한다.
이번 컴백 무대는 처음으로 콘서트로 마련했다. 그윽한 조명아래,
팬들에 들러싸여 멜로디를 새기는 그순간들.
팝송도 부르고 장난도 치고 초대한 친구들과 헤프닝도 벌일 참이다.
늘 그랬던 어설픈 나의 유머가 최선이라 믿어줄,
그렇게 쓰러지며 웃어줄 팬들을 행해. 그렇게 흘러가고 있겠지, 나의 노래는.
정치와 음악, 문학,
그 중심에 선 휴머니즘...
나의 음악과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 그리고 팬들...
그렇게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한
꿈결같은 쿠바를 되새기며
떠나기 전 문득 써버린 수록곡의
마지막 가사를 읊조린다.
"30년 뒤에 쿠바에서 다시 만나요."
Chao, CUBA
2002. 8. in Cuba, KANGTA
Never Ending Story
먼저 가사와 똑 닮은 그의 말투, 그거 알아요?
음,가끔씩은...이렇게요, 그렇게요. 그리고 그의 매너,
"안녕하세요?" "잘 주무셨어요?"
"더 드셔야죠(그리고 제 접시의 새우껍질을 벗겨줍니다)."
"제가 할게요. 저 잘할 자신 있어요(그러면서 샐러드 접시 가득
채워옵니다)." "전 제 일이잖아요.누나들이 고생 많았죠(콧잔등을 찡긋거리며,
차 코디와 저의 취향에 맞춰 각각 향수 하나씩 줍니다)."
짐을 부치지 않은 LA공항과 겨우 찾은 짐을 이동해주지 않은 멕시코 공항,
호텔 내에서 전화 회선 나가는 게 밥 먹듯 하고 공중전화 하나 없는 쿠바...
결국 출발 하루 전 오후 5시,겨우 짐을 받아 거리에서 마구 밀어 찍어야 했던
그 모든 상황들.하지만 참을 수 있었다.
강군,너무 고마워~2집 대박 날거야~
그리고 희용씨, 우노 식구들, 끝내 울고만 차코디와 새벽에 회사로 달려가
공항들로 전문을 띄워준 전소와 깨모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애써주신 정은영
선배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부장, 속 많이 썩으셨죠,TT
참,강군 팬 여러분,LA공항 델타항공으로 항의 멜 띄워요.
그 금발의 여자 다가와 하는 말,
"Are You Single?" "You My Type!"라며 그를 만졌습니다.
그 옆 뚱뚱한 흑인 여자도! 하마터면 강군 LA에서 납치될 뻔?
2002년 7월 31일 퀘벡 상공에서 죄 많은 홍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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