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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타의 음악적 소신 (Asiana Entertainment)

혀니나라 2018. 6. 8. 21:21

출처 : Asiana Entertainment
         In-Flight Entertainment Magazine
         April 2007, Vol.13 No.4




강타의 음악적 소신

3월9일, 강남에 있는 SM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강타를 만났다. 금요일 오후였다. 약속시간보다 이르게 약속장소에 도착해 주차장에서 인터뷰 때 할 질문들을 정리해 보고 있던 참이었다. 주차장 안으로 차 한 대가 들어오고 강타가 내린다.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인 6시에서 15분 전즈음이다. 그리고 몇 분 뒤, 정확하게 6시에 강타와 마주 앉았다.

처음엔 뭔가 꿰뚫어보는 듯한 그의 눈이 부담스러웠지만 이내 그 눈빛에 익숙해졌고 그러면서 속으로 이런생각을 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진한 인상이 소녀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지만, 그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짐일지도 모르겠다는. 어쨌든 그는 분명 우리나라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아이돌 그룹 H.O.T.의 장밋빛 시절보다 더욱 큰 호감으로 다가왔다.

시간의 마력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그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강타에게 속한 시간의 흐름은 진솔한 인생의 표정을 갖게 해 준 듯했다. 순수한 소년에서 감성적이고 과묵한 남성의 열정으로 변하는 순간에 만난 그는 매력적이었다. 그의 미소는 이날 최고의 비주얼이었다.


"와, 96년 생! 내가 제일 늙었네. 프로필 붙어 있는 사람 중에 제일 늙은 사람이 저인데요." 그가 손짓하는 곳을 따라가 보니, 그가 앉은 자리 옆으로 SM 소속 가수들의 프로필이 주욱 붙어있다.

문득 그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아주 정직하게 말하자면 3월9일 전까지 내게 강타는 아이돌 스타였다. 그런 까닭에 내년이면 서른 살이 된다는 그의 말에 내심 놀라며, 그 나이의 강타로 그를 다시 본다. 나는 그랬다. 시간이 멈춰진 듯했다. H.O.T. 멤버들에겐 모두 같은 느낌으로. 특히나 강타는 더욱 그랬다. 그가 곧 H.O.T. 이고 H.O.T.가 곧 그인 듯, 영원히 H.O.T.일 것만 같은 이런 생각이 그에게 부담이 되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H.O.T. 1996년 그들이 세상에 등장하자, 우리나라 가요계는 H.O.T. 바람에 휩싸였고, 그들은 누가 뭐라 해도 최고의 스타였다. 지금까지 H.O.T.의 인기를 능가하는 사람을 꼽자면 서태지 정도.  한 시대의 음악 산업을 변화시켰고, 한 나라의 음악계를 전복시키고도 남을 만한 지독한 인기였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2001년 해체를 선언한다.  소녀 팬들은 은퇴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해체 후의 가상시나리오까지 등장하며 세상은 H.O.T. 해체설로 떠들썩했다.

팬들은 세상의 종말이 온 듯 목 놓아 울었고, H.O.T.도 그들과 함께 울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강타, 문희준, 장우혁, 토니안, 이재원, 다섯명의 H.O.T. 멤버들은 모두 솔로 가수로 데뷔한다. 언제 한 그룹이었냐는 듯이 모두가 다른 음악을 시도했고 강타 역시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발라드 음악을 했지만, 여전히 H.O.T. 와 강타가 오버랩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돌 스타가 아닌 그냥 한 남자가 보인다. 그렇게 강타는 스타보다 아티스트가 되어 가고 있다.

인터뷰는 SM의 3층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내가 먼저 자리에 앉고 그다음 그가 정면에 앉는다. 탁자 위에 놓은 녹음기에 그의 목소리가 녹음되고 있다는 빨간 불이 들어온다.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요. 사무실에는 자주 나오시나요?

말만 이사지, 회사에 자주 나오지는 않아요. 연습할 때, 그리고 회의할 때만 나오죠. 요즘엔 5월 음반 준비 때문에 종종나옵니다.

5월이면 얼마 안 남았네요?

예, 그래서 요즘엔 곡작업하고 있어요, 중국엔 지난달까지 있었어요, 드라마 때문에요. 3달동안 한국과 중국을 오가면서 드라마 촬영을 했어요. 1년에 100~150일은 중국에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요즘엔 주위 분들이 TV에서 너무 오래 못 봤다고 하시네요.

이번 앨범은 내면서 한국에서 활동 열심히 하려고요. 이번 앨범은 한국에서 발매되지만 중국에서도 같은 음반이 번안되어 발매될 거예요. 같은 음반인데, 언어를 다르게 해서 중국 로컬 음반처럼요.

중국에서 돌아오신 지 얼마 안 된 거네요?

드라마 촬영 때문에 그랬죠. <남재여모 2>라는 중국 드라마인데, 전편인 <남재여모>는 중국에서 굉장히 인기있었어요. 영화로도 이미 제작됐고요. 저는 <남재여모 2>에서 주인공을 맡았어요. 중국에서 저를 좋아해 주시는 것에 비해 제가 중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중국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드라마에서라도 제 진실한 모습을 보여 드리려고 했어요.

♣ 연기는 어떤가요?

연기는... 잘 못하죠. 한국에서는 <러브홀릭>이라고 김민선 씨랑 함께 드라마를 찍었었는데, 첫 작품의 흥행이 저조해서 그런지 한국에서는 연기가 부담이 되네요. 하지만 중국에서는 드라마의 위험부담이 적어요. 잘될 때는 엄청 잘되고, 안 돼도 지방방송국 여러군데에서 방영되기 때문이죠.

올해 한중홍보대사로 선정되었는데, 그런 타이틀이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제 활동에 도움이 된다 안 된다를 떠나 개인적으로 너무나 영광이죠.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문화외교관 역할을 하는 거니까요. 태어나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영광이에요.

H.O.T. 해체 후 멤버 모두가 다른길을 가고 있는데,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과 다르게 가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나요?

그런 생각은 안 들어요. 단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많이 달라지니까 그 방향에 대응을 하다 보니 여러가지 일을 하는 것 같아요. 필요에 따라 바뀌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일들은 꼭 해야 하잖아요. 그건 분명히 내가 원하는 건 이쪽인데, 할 수 없이 따라가는 느낌은 아니에요.

H.O.T. 멤버들을 보면 토니 형은 진짜 사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비즈니스, 투자 이런 쪽에 관심이 많아서 지금처럼 사장이 될 줄 알았고, 재원이는 정말 흑인 랩을 하고 싶어 했던 친구였어요. 그리고 희준이 형은 정말 록을 좋아했어요. 우혁이 형도 혼자 무대에서 퍼포먼스하는 것을 꿈꿨죠.  그렇게 보면 각자가 가고자 했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발라드를 하고 싶었고 예전부터는 아니지만, 연기도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다섯 명 다 다행이도 가고자 하는 길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방금 음악과 연기, 모두에 욕심이 있다고 했는데...

그래도 노래가 더 좋죠. 사실은 노래라기보다는 총체적인 음악을 좋아해요. 저는 곡 쓰고 노래 부르는 직업이 정말 좋아요. 제가 그런 일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제 일상이 노래하는 감정선을 따라 흐르는 것 같아요. 그렇게 흘러가는 제 감정선이 발라드를 불러야 할 때면 좀 우울해 지는데, 나쁜 우울함이 아니라, 제 안의 감성적인 부분을 뽑아 내는 듯한 느낌이 돼요. 음악 때문에 제 일상의 패턴이 바뀌는 것이 좋아요. 천상 제 본업은 음악인 것 같아요.

추상적인 질문일 수 있지만, 이후에는 음악에서 어떤일에 더 중심을 둘 생각인가요?

일단은 지금처럼 계속 일하고 싶어요. 제가 2선으로 빠져서 젊은 친구들을 양성하는 건 좀 이른 얘기인 것 같아요. 군대 갔다 온 다음에도 계속 활동하고, 또 때가 되면 후배양성을 할 수도 있지만 후배양성 한다고 1선에서 발을 빼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늘 꿈꾸는 것은 노래하는 프로듀서거든요. 프로듀싱을 하지만 무대위에 서서 노래를 하는 그런 거요. 제가 키운 후배들과 같은 무대에 서고 싶어요.

5월 음반에 대해 질문할게요. 곡 작업은 많이 하셨나요?

네, 지금 가장 바쁠 때에요. 이번 앨범이 발라드이기 때문에 요즘은 아무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 좀 많아졌어요. 감성적인 부분이 많이 삽입될 것 같아서요. 감정의 흐름을 그쪽에 맞추고 있어요.

5월이면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인데, 그런 시즌에는 발라드를 잘 안 내잖아요?

그런데... 저는 내려고요. 예전과 달리 이제 인터넷에서 음악을 도구로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계절과 관계없이 좋아하는 음악은 꾸준하게 듣잖아요.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편안하고 조용한 음악, 계절과 무관하게 내내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타이틀 곡이나 음반의 컨셉은 정해졌나요?

타이틀 곡은 아직 미정이고요. 이번에는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가려고요. 저는 노래할 때 호흡이 좀 많이 들어가요. 호흡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은 감정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듣는 사람이 가수가 울면서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거죠.

이번에는 보컬이 혼자 울어 버리고 웃어 버리는 감정의 기복이 심한 노래가 아니라, 제가 사랑과 이별을 얘기하듯 읊조리면 듣는 사람이 눈물 흘리는 노래를 만들려고 해요. 그간에 제가 느꼈던 사랑과 이별의 감정을 솔직하게 담았죠.

사랑과 이별의 솔직한 감정, 그건 겪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잖아요.

저는 심하게 겪어요. 사랑을 할 때도 열정적으로 하고, 그만큼 이별에도 심하게 아파해요. 제가 왜 주저리주저리 슬픔을 토하고, 애틋한 게 많이 남는지 아세요? 말을 못해요. 헤어질 때도 하고 싶은 말을 못해요. 사랑했다라든가 붙잡고 싶은 마음도요. 그쪽에서 낌새가 이상하면 제가 먼저 헤어지자고 해요. 한마디도 안 해요. 헤어지자고 할 때 한마디도 못하고 돌아서서 울어요. 그래서 제 노래에서 그런 애틋한 감정들이 터져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럼, 이후에도 음악 장르는 발라드인가요?

그렇죠. 서정적인 음악이 저에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런 감정들이 제게 편안해요. 물론 퍼포먼스를 빼놓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발라드예요. 아무래도 저는 감정선이 커서 발라드가 더 맞는 거 같아요.

음악도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작업이에요. 저만 좋자고 감정 이입을 최고로 해서 노래방에서 처럼 부르면 희한한 감정과 그 감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희한한 목소리가 나와요. 절제하면서 최대한 감정을 조절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과장되지 않게 제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어요. 저도 내년이면 서른이니까요.

강타가 서른 살이 된다는 게 이상하네요.

어렸을 때부터 봐와서 아직도 제가 '20대 중반 정도나 됐을까' 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H.O.T. 때의 모습이 눈에 익어서 그런가봐요. 하지만 저는 제 나이와 실제모습에 솔직하고 싶어요. 내 나이에 느끼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 그런 것들을 표출하고 싶어요. 시간이 가는 것을 감추지 않고요, 그냥 솔직하고 싶어요. 내 나이에 맞게요.

데뷔해서 지금까지, SM과 인연이 참 긴 것 같아요.

12년 됐네요. 그동안 재계약을 3번 했어요. 물론 그 시간 동안 유혹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다른 곳에 간다고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다고 봐요. 제가 지금 이렇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 준 곳이고, 저를 가장 잘 아는 곳이죠. 돈 몇푼 더 받겠다고 다른 곳에 가는 건 무의미한 것 같아요.

회사에게는 큰 자산이겠네요.

회사가 제게 큰 자산이죠. 3번째 계약을 할 땐 소속가수로서보다는 파트너로서 할 내용이 많았어요. 회사에 대한 책임감, 소속 아티스트들에 대해 더 많이 신경쓰고, 아이디어를 내고 그런 것들은 가수로서가 아닌, 회사의 이사로서 할 일이죠.

나이 차이가 어느 정도 있다 보니까 후배들을 더 많이 챙기게 돼요. 같은 아티스트 입장에서 챙겨 주는 게 후배들에겐 피부에 더 와 닿는 거 같아요. 제가 겪어 봤기 때문에 어떤 시기에 어떤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아니까요.

데뷔 12년차면 현재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일단은 질적인 성장은 아시아에서 최고라고 봐요. 일본보다도. 음악적인 수준도 그렇고, 드라마나 영화도요. 시스템에서는 일본이 앞설지라도 콘텐츠만 봤을 때는 우리나라가 우수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까 요즘 나오는 친구들이 많이 힘들 거같아요. 저희 때는 분위기라는 게 있었어요. 어느 정도 분위기가 있으면 조금 모자라는 부분도 커버가 됐죠. 하지만 요즘 나오는 후배들 보면 측은해요. 모든 게 완벽해야 하거든요. 인터넷이 대중화됐고, 그래서 모든 것이 노출이 되죠. 일상의 모든 것을 포함해서 노래, 외모, 춤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해요. 그래서 즐기면서 일하는 부분은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그래도 그런 배경 때문에 질적으로는 정말 많이 성장했죠.

본인을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콘텐츠화한다면요?

그래도 역시 음악인 것 같아요. 연기도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연기야 워낙 잘하시는 분들이 많고 저는 노래하는 게 좋으니까요. 음악은 제 인생이고, 어느 정도 계획도 서 있어요. 음악이라면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말한 것처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정말 많이 달라졌요. 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많이 힘들 것 같으네요.

그런 면에서 해외 시장 개척은 돌파구가 되기도 하죠. 하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티스트 자신에게 있어요. 한국은 엔터테인먼트 트랜드가 굉장히 빨리 변하기 때문에 그걸 따라가려고만 하면 너무 힘들죠. 어떤 적당한 부분에서 자기 색을 찾아서 가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물론 저도 H.O.T. 때 처럼 다시 톱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어요. 톱보다는 오랜 시간 신뢰하고 볼 수 있는 사람, 음악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믿음을 갖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저에 대한 믿음 때문에 제 노래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누구나가 다 즐길 수 있는, 특별히 제 팬이 아니어도 그냥 개인 홈페이지 배경음악으로 깔아놓거나 핸드폰 컬러링으로 깔아놓고 들을 수 있는 음악. 이번 앨범의 목표예요.


H.O.T.를 만나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아이돌 스타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면서 들었던 생각은, 내가 만난 강타는 아이돌 스타가 아니라 확실한 음악적 소신을 가진 남자라는 것이다. 그렇게 음악적 소질을 갖춘, 지적인 아이돌 스타는 지금까지 통틀어 보아도 드물 것이다.

글/이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