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커버스토리] Call me by my name_배우 김선영, 강타

혀니나라 2018. 8. 18. 07:38

출처 : 씬플레이빌
         2018년 8월호


[커버스토리] Call me by my name_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배우 김선영, 강타





Call me by my name

 
무대 위에서 20년의 생애를 보내며 자신들의 이름에 믿음을 쌓아온 김선영과 강타. 두 사람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위에서 만났다.

editor 김은아   photographer 장원석   stylist 정혜진



무대의 자격





강타, 그를 기다리는 동안 새삼스럽게 그 이름을 한 글자씩 뜯어보았다. 실제 인물보다는 만화 주인공에 어울릴 법한 두 글자. 덕분에 데뷔 초에 그의 이름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놀림감의 단골 소재가 되곤 했다. 그러나 그는 20년간 묵묵히 음악으로 그 웃음을 자연스럽게 한 뮤지션을 향한 진지한 믿음으로 바꿔왔다. 그리고 강타는 다시 한 번 더 그 이름이 다시 생경하게 느껴지는 세계, 뮤지컬로의 첫 발걸음을 막 뗐다. 파스텔빛 포스터 위에 쓰인 그의 이름 두 글자는, 1996년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할 때처럼 생경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 낯섦을 익숙함으로, 또 믿음으로 바꾸는 것이 그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강타는 부지런하게, 또 영민하게 나름의 풀이를 이미 시작한 참이다.


그 첫 단계는 ‘언제’에 대한 문제다. 사실 그는 진작 몇몇 작품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던 터였다. “저도 사실 뮤지컬 팬이에요. <햄릿>은 음악부터 대단하고, <잭 더 리퍼>나 <맨 오브 라만차>도 얼마나 멋져요. 그러나 대부분 뮤지컬들은 화려한 판타지나 역사적인 사건, 이중인격 같은 강한 캐릭터가 나오더라고요. 그게 과연 제 옷일까 하는 고민이 가장 컸어요.” 그런 점에서 <매디슨>은 여타의 뮤지컬들과 다른 결을 지닌다. 등장인물들은 현실에서도 찾을 수 있는 평범한 옷차림이고, 그 안의 사건과 감정 역시 무대 위보다 무대 밖의 세상을 더 닮아있다. 그 지점에서 강타는 반가움을 느꼈다.


“굉장히 미묘한 감정을 연기와 음악으로 표현하는 이 작품이 저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해오던 음악들과 <매디슨>의 음악 색깔이, 뮤지컬과 저 사이의 교집합을 만들어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고 보니 ‘북극성’ ‘그 해 여름’ ‘단골식당’처럼, 아련한 사랑을 서정적인 음악에 담아온 강타의 음악과 <매디슨>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는 듯 보인다.





그렇게 신중한 고민 끝에 들어선 또다른 무대. 줄곧 대중가수로 무대에 서온 그에게 뮤지컬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었다. 몇 년 간의 그룹 활동을 제외하면 팀을 이뤄 함께 무대를 만드는 것도, 그 팀의 일원인 뮤지컬 배우들과의 작업도 처음이다. 더불어 배우들을 향한 고정관념(?)은 처음 연습실에 들어서는 그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가수들과 다르게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의 약속이 촘촘히 짜여져 있잖아요. 그 영향으로 배우들도 진지하고 딱딱한 사람들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어요. 연습 분위기도 엄숙하고 근엄할 것만 같았고요. 그런데 다들 그렇게 털털할 수가 없어요. 서로 ‘아기 얼마나 컸냐’면서 사는 이야기로 수다 떠느라 바쁘고요. 물론 다시 음악이 시작되면 대단한 아우라가 나오지만요.”


강타는 특유의 다정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가 얼마 전까지 속해있던 자리인, 심야 라디오 방송의 DJ처럼. 그러나 로버트는 오지를 누비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만큼 마냥 부드럽기만 한 캐릭터는 아니다. 강타의 고민도 이 지점에 있다. “은태가 보여줄 ‘은버트’가 젠틀하면서도 남성미를 갖추고 있다면, ‘타버트’는 아무래도 그보다는 더 여리고 수줍은 모습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물론 이런 차이가 주는 재미도 있겠지만, 로버트라는 캐릭터의 본질은 공통적으로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좀 더 남성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고민 중이에요. 어미를 떨어뜨리면서 툭툭 던지는 듯한 말투를 시도한다든가. 무엇보다 ‘강타는 이럴 거야’하고 그려지는 그림에서는 벗어나고 싶어요. 뻔한 느낌을 주기는 싫거든요.”


강타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지만 동시에 곡을 쓰는 작곡가이기도 하다. 천재로 불리는 <매디슨>의 작곡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다. 뜻밖에도 그의 입에서는 축구선수 이름이 나왔다. “축구팬들은 호날두나 메시처럼 수준이 다른 경기력을 가진 선수들을 ‘신계(神界)’라고 표현하는 것 아시나요? <매디슨>의 음악이 바로 그래요.” 그는 지금 막 환상적인 플레이를 목격한 경기장의 관중처럼 신이 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음악도 결국 코드 진행, 화성, 박자의 틀 안에서 만들어지기 마련이거든요. 예를 들면 A 템포로 네 마디, 다른 템포로 여덟 마디, 여기서 아쉬우면 격정적으로 한 마디 더 추가, 이런 식의 공식이랄까… 그런데 이 작품은 달라요. 사람의 감정을 그대로 악보에 옮겨 놓았다고 보면 돼요. 그러다 보니 여덟 마디 동안 템포가 네 번이나 바뀌기도 한다니까요. 아마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악보를 보면 ‘이런 곡을 어떻게 쓰지?’ 할걸요!(웃음)” 덕분에 작품의 음악을 해석하는 데에만 꼬박 3~4주일을 보냈다고 했다. 마치 20여 년 전 처음 음악을 배울 때처럼 헤매면서.


음악으로 인한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로버트로서 연기를 하다가도 노래를 부르는 순간 ‘가수 강타’가 불쑥 등장한다고 했다. “가수 출신이라서 그런지 ‘노래는 진짜 잘 해야 돼’하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있어요. 그런데 의식하는 순간 발음이고 박자고, 손짓까지 제 콘서트 버전으로 바뀌어버리더라고요. 남은 시간 동안 가수로서의 강타는 완전히 지우고 로버트로서 노래에 이야기를 담는 것에 가장 공을 들이려고 해요.” 이 부분이 완성된다면 창법과 발성을 바꾸지 않고도 지금까지와 다른 모습으로 보여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같은 맥락에서 스스로 공연을 평가하는 기준 역시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한다. “아직까지는 ‘잘 했다’의 기준이 음악에 치우쳐 있어요. 음정에서 작은 실수라도 생기면 마음에 오래 남거든요.





그러나 음악적으로만 매끄러운 공연보다, 설사 음악적으로는 사소한 실수가 있더라도 로버트의 진심을 제대로 전달한 공연이 더 좋은 공연이라는 걸 알아요. 이를 제 스스로가 마음으로 받아들이게될 때 비로소 뮤지컬 배우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설 자격이 완성된 다고 생각해요.”


<매디슨>은 그에게 단지 새 장르의 첫 도전이라는 것 외에도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했다. 무대에 서는 사람으로서의 가치,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감동과 기쁨이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체크할수 있는 리트머스지랄까. 이 무게감이 주는 부담으로 그는 매일 밤잠을 설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루는 지옥이었다가, 하루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가, 그런 날의 연속이에요. 넘버가 쉬운 것도 아니라 굉장히 겁이 나는데, 철저한 준비만이 이 불안감을 해소할 수있을 것 같아요. 무조건 연습 또 연습해야죠.” 그는 관객들의 평가를 듣는 데도 몸 사리지 않겠다고 용감하게 말한다. “지금까지의 무대에서는 잘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었던 부분이 있죠. 그러나 뮤지컬은 관객들이 모르는 배우가 나와도 감동과 기쁨을 가지고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누군지 모르는 관객이 와도 좋은 공연이었다고, 괜찮은 배우였다고 느끼게 만들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좋지 않은 평가도 일일이 체크해서 잘 반영하려고 해요. 결국 성장해서, ‘강타는 진짜 배우다’라는 말까지 들을 수 있으면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