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칼럼 - 강타 2부. 강타는 왜 '응답하라 1997'에 박탈감 느꼈나
출처: NAVER
2013.04.02 15:36
[스타칼럼-강타] 2부. 강타는 왜 '응답하라 1997'에 박탈감 느꼈나
지난 해 tVN의 감성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케이블TV 드라마 사상 최고시청률을 기록하며 장안의 화제를 독차지했습니다. 동네 주부들 사이 체감 시청률은 지상파 TV 40% 수준을 훌쩍 넘었고 2030 젊은 세대 입소문이 방송 내내 인터넷을 후끈 달궜던 명품 드라마로 아직도 회자되는 중이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정은지? 서인국? 아니 바로 1990년대 아이돌 붐을 일으킨 원조그룹 H.O.T 입니다. 그럼 H.O.T의 꽃미남 멤버 강타는 이 드라마를 어떤 심정으로 지켜봤을까요. 강타가 네이버 스타칼럼 독자 여러분께만 살짝 ‘응답하라’에 얽힌 비화로 2회를 시작합니다. 아쉽지만 다음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강타의 스타칼럼은 여기까지. 요리하는 싱글남 강타의 소소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편집자 주
# ‘응답하라’ 보고 신화 김동완이 펑펑 운 사연
지난 해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을 저는 뒤늦게 알고 봤어요. 드라마 속 H.O.T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얼마나 큰 박탈감을 느꼈다면 네이버 독자 여러분은 이해되실까요? 아! 제게, 아니 H.O.T에게 저런 시절이 있었지 생각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드라마를 즐겼지만 ‘응답하라’가 끝난 다음에 깨달았죠. H.O.T의 시대는 이제 과거의 기억 속으로 묻혔다는 걸.
신화의 신혜성과는 아주 친한 사이인데 혜성이 ‘응답하라’ 관련해서 재미난 일화를 들려주더군요. 신화 멤버 김동완이 혜성에게 ‘응답하라’ 시청 소감을 얘기하면서 펑펑 울었다는. 그 역시 저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박탈감을 느꼈던 게 아닐까요.
H.O.T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신화의 시대가 있었고, 그들도 이제 다 30대입니다. 우리에게 ‘응답하라 1997’은 참으로 많은 걸 돌이키게 만든 드라마예요. 그러고 보니 저도 벌써 30대 중반입니다. 화려한 솔로 생활을 즐기는 듯 싶지만 어떨 때는 많이 허전하고 벌써 학부모가 된 동창들을 부러워하기도 해요. ^^
# 강타는 어떻게 요리하는 재미에 푹 빠졌을까
혼자 살다 보니 외식이 잦은 편이지만 집에서 요리하는 걸 즐기는 편이기도 해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두 분 다 장사를 하시느라 바쁘셔서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혼자 밥을 챙겨먹을 때가 많았어요. 누나와 형은 저랑 터울이 커서 그 때는 벌써 밖에 많이 있었어요. 저는 초등학생이라 집에 빨리 들어오니까 식사 준비를 직접 한거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서는 어머니 아버지가 남들 다니는 학원은 다 챙겨 보내셨는데 음악을 배우겠다고 했더니 유 독 음악 학원만 안 끊어 주시고 반대를 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학교를 땡땡이 치고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음악 학원을 다니고 테이프나 LP를 구입했어요. 음악을 듣느라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요. 그 때부터 어떻게 요리하면 맛있게 먹을까 하고 요리조리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아요.
첫 단계는 어떻게 해야 지금 있는 재료로 맛있게 만들까, 여러 가지 시도를 했고요. 데뷔 후에는 전국의 맛 있다는 음식점 찾아서 엄청 돌아다녔어요. 집이나 숙소에서 뭔가 요리하고 만들어 먹을 시간은 없었지만 그렇게 맛집을 자주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감각을 개발한 셈이요.
H.O.T가 해산하고 시간도 흘러 혼자 살게 됐을 때 이제 요리를 제대로 해볼까 싶었어요. 집을 한 채 짓게 돼서 지하에는 녹음실, 그 위층에 가족들이 살고, 3층이 다른 가족이 살고, 1층에 저만 사는 식으로 독립했어요. 새벽까지 음악 작업을 하기 위해 지하와 1층에는 공을 들여 방음 장치를 했고 밤샘 작업도 많이 했답니다. 이 때부터 혼자서 많이 요리해 먹었어요.
# 여자친구를 위해 만들게 된 파스타
이태리 음식을 좋아하는 편인데 거기에는 사연이 있답니다. ㅎㅎ 사실 2003년 쯤에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이태리 음식을 너무 좋아했어요. 리조또와 파스타 같은 메뉴를 특히 즐겨 먹길래 한 번은 제가 직접 리조또를 만들었어요.
요리가 참 재미있는 일이구나 생각하게 된 계기였고 또 리조또라는 음식에서 요리의 참 맛을 배웠어요. 리조또는 이태리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사랑을 표시하고 싶을 때 만들어 주는 음식이랍니다. 당시에 제가 사용했던 레시피 대로라면 육수 자체를 열 시간 정도 정성들여 끓여야 돼요.
생쌀을 넣고, 육수를 붓고, 육수가 쫄면 또 붓고, 또 붓고, 생쌀이 그렇게 졸아가면서 리조또 특유의 식감이 나올 때까지 잘 저어야 하는데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요리사의 정성을 쏟아야 되는 음식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이 제가 공들여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줬을 때 그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저의 본업은 음악이지만 요리는 휴식입니다. 친구나 동료들을 가끔 모아서 파스타 파티를 열어줄 수 있고, 제가 좋아하는 와인을 꺼내 함께 즐기는 시간의 행복이라니, 요리 자체가 휴식이에요.
# 요리사 강타를 채점한다면 그 점수는요?
요리하는 걸 좋아하던 참에 요리 프로그램 출연 제의들이 들어왔어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 그리고 이 프로그램들을 하면서 요리에 대해 더 많은 걸 배우게 됐습니다. 사실 크림소스 파스타, 카르보나라 등 우리나라에서 많이 먹는 메뉴들이 정작 이탈리아에 가면 많이 없다는군요. 한국적으로 변한 맛이래요. 토마토 소스도 다른 부분이 많고. 주로 이탈리아 사람들이 많이 먹는 건 오일 파스타죠. 재료 자체의 맛을 그대로 즐기는 메뉴들을 이탈리아에서 선호한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에 넘어오니 여러 소스가 발달했는데 저도 처음에는 진한 맛 소스를 듬뿍 쓰는 게 요리할 때 더 쉽고, 했을 때 더 맛있는 듯해서 선호를 했어요. 그런데 진짜의 맛은 오일 파스타더군요 재료가 올리브 오일, 화이트 와인, 간을 잘 조절한 면에 살짝 얹는 몇 가지 해산물이나 고기류, 그리고 소금 후추만 있으면 끝나요. 그런데 이렇게 맛을 내며 요리하는 과정이 참 재미있더라고요.
전문적인 요리사를 빼고 그냥 집에서 파스타를 만드는 사람이 10명 된다면 제 음식 솜씨는 아마 잘하는 3,4명 한에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 저는 요리할 때 제 철학도 많이 섞어요. 매콤한 거 좋아하는 식성인데 보통 사용하는 이탈리아 고추 대신에 저는 아주 매운 베트남 고추나 청양고추를 써요. 그럼 풍미가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런 아이디어나 철학들을 섞는거죠. 전문 레스토랑들은 정통의 것을 추구겠지만, 저는 아마추어 요리사니 제 마음대로 요리할수 있다는 자유를 만끽하는 거죠. ^^
# 빨리 결혼하고 싶습니다. 왜냐고요?
가장 친한 친구라면 신혜성, 이지훈을 꼽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도대체 장가갈 생각들이 없네요. ㅎㅎ 제가 아직 솔로인데는 친구들 영향이 크지 않을까요? 그런데 학교 동창중에는 얼마전 일찍 결혼한 친구 첫째 딸이 초등학교 입학했어요. 27살이나 28살에 결혼했으면 그 정도 될 수 있죠.
남자 동창들 만나면 술자리에서 초등학교 입학, 돈 들어가는 게 이만 저만 아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더라고요. 연예계 쪽에서는 30대 중반이라도 노총각 소리는 안 듣는데 저는 동창들도 자주 만나다 보니 조급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참한 아이들을 보면 저도 자녀를 둔 아빠가 되고 싶어서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납니다. 이런 아이면 얼마나 예쁘고, 같이 사는 게 얼마나 즐거울까 생각하게 돼요. 이십대 후반 때 특히 결혼하고픈 마음이 강했어요. 당시 군대부터 갔다 와야 하니까 그랬나봐요. 집에 들어갔을 때 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뭐 그런거죠. ^^ 그게 벌써 5-6년 전이네요. 지금은 아이들 때문에 결혼하고 싶어요.
# 좋은 사람 만나는 데 환경 제약이 너무 큽니다
그런데 제 생활 패턴 자체가 방송일 외에도 이래저래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은데다 여러 가지 챙겨야 할 일정들이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지다 보니 누구를 만난다는 게 너무 힘들어요. 또 음악 일이란 게 옆에 누가 있으면 신경 쓰여서 못해요. 작업실과 녹음실도 다 집에 있는 데 그런 생각을 하면 결혼할 엄두도 못 내는 게 사실이에요.
작곡하는 데 아내가 요리를 한다고 치면, 제 입장에서는 신경이 곤두설 것 같아요. ‘여보 밥 먹어’ 이러면 일 못하는 거죠. 실제로 어쩔 때는 옆 집 강아지 짓는 소리만 들려도 감정이 확 깨질 때가 있어요.
결혼하는 데 가장 큰 제약은 해외에 한 번 나가면 오래 있는다는 거죠. 올 해는 국내에 주로 있었지만 보통 일 년에 절반은 중국에 있어요. 대부분 중국에 있는 경우 많아 연애할 수 있는 환경이 제약 될 때가 많아요.
저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네이버 스타칼럼 애독자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늘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항상 여러분 곁에 머무는 강타가 되겠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글 : 강타
편집 : OSEN 손남원 국장(mcgwire@osen.co.kr)
사진 : 강타, SM엔터테인먼트, OSEN 제공
【スターコラム】カンタ「応答せよ1997」を見て何を感じたのか“神話のドンワンも号泣” ― Vol.2
昨年tvNドラマ「応答せよ1997」は、ケーブルテレビのドラマ史上最高の視聴率を記録し、話題を集めた。町内の主婦たちの間から感じられる視聴率は、地上派テレビでの40%レベルを遥かに超え、20代、30代など若い世代の口コミが番組の放送が続く間、インターネットに書き込まれ続けたこのドラマは、いまだに名作ドラマとして広く知られている。同ドラマの主人公は、A Pinkのチョン・ウンジなのか? それともソ・イングクなのか? いや、それはまさに1990年代にアイドルブームを巻き起こした元祖アイドルグループH.O.T.である。それでは、H.O.T.のイケメンメンバー、カンタ(KANGTA)は、このドラマを見ながら何を感じたのだろうか。カンタがNAVERスターコラム読者の皆さんにだけこっそり話す「応答せよ1997」にまつわる裏話で第2部を始めようと思う。残念だが、また今度会えることを楽しみにしながらカンタのスターコラムは今回までとなる。料理する独身男性、カンタの日常話を楽しく読んでいただきたい。/編集者
「応答せよ1997」を見て神話のドンワンが号泣した理由
昨年放送されたドラマ「応答せよ1997」を僕は後から知って見ました。ドラマの中のH.O.T.を見ながら僕がどれほど大きな剥奪感を抱いたのか、読者の皆さんには分かっていただけるでしょうか。ああ!僕に、いや、H.O.T.にあんな時があったなと思いながら時間が経つのを忘れてドラマを楽しみましたが、このドラマが終わった後気づきました。H.O.T.の時代はもう過去の記憶になってしまったということを。
神話(SHINHWA)のヘソンととても親しいのですが、ヘソンが「応答せよ1997」に関して面白い話をしました。神話メンバーのドンワンがヘソンに「応答せよ1997」を見た感想を語りながら号泣したということでした。彼も僕のようによくわからない剥奪感を抱い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H.O.T.より遅れて出発しましたが、神話の時代がありましたし、彼らも皆30代です。僕たちにとって「応答せよ1997」は、本当にたくさんのことを振り返らせたドラマです。いつの間にか僕も30代半ばになりました。華やかな独身生活を楽しんでいるように見えますが、とても寂しい時もあるし、親になった同級生が羨ましくなる時もあります^^
カンタはどのように料理にはまったのか
一人暮らしで外食が多い方ですが、家で料理することも楽しんでいます。幼いとき、親が二人とも商売で忙しくて学校が終わって家に帰ると一人でご飯を食べることが多かったのです。姉と兄は僕と年が離れているので、そのときはすでにほとんど外に出ていました。僕は小学生だったので帰宅するのが早く、自分で食事の準備をしました。
小学校の高学年になると、母と父は普通皆が通う塾にはすべて通わせてくれましたが、音楽を学びたいと言ったらそれだけは反対されました。それで学校をさぼってバイトして稼いだお金で音楽学院に通ってテープやLPを購入しました。音楽を聞くため家に一人でいる時間が多かったです。その頃からどういうふうに料理すればおいしく食べられるかいろいろと考えていたと思います。
最初の段階は、どうすれば今ある材料でおいしいものを作れるのか色々と工夫しました。デビュー後は、全国のおいしいお店をたくさん探し回りました。家や宿舎で何か料理して食べる時間はありませんでしたが、そのようにおいしい料理を探しながらグルメの感覚を身につけたわけです。
H.O.T.が解散し、時間も流れ一人で暮らすことになったときは、ちゃんとした料理を作ってみようと思いました。家を一軒建てることになり、地下にはレコーディング室、その上に家族が住んで3階には他の家族が住んで、1階に僕が住むような形で独立しました。夜明けまで音楽の作業をするため、地下と1階にはきちんと防音設備を備え、徹夜で作業したことも多かったです。その頃から一人でたくさん料理を作るようになりました。
彼女のため作ったパスタ
イタリア料理がとても好きですが、それには事情があります(笑) 実は、2003年頃に好きな人がいたのですが、彼女はイタリア料理がとても好きでした。リゾットとパスタを特によく食べていたので、1回は僕が自分でリゾットを作りました。
それが料理ってとても面白いなと思うようになったきっかけであり、またリゾットという食べ物から料理の醍醐味を学びました。リゾットはイタリア人の親が子供に愛情を表現したいときに作ってあげる食べ物だそうです。当時僕が使ったレシピ通りにすると、スープを10時間ほど丁寧に作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生米を入れ、スープを注ぎ、スープが少なくなるとまた注ぎ、さらに注いで。そんなふうにして生米が炊かれてリゾットの食感が出るまでよくかき混ぜなければなりません。きちんと作るためには、シェフが念入りに作らなければならない料理です。愛する人が手間をかけて作った僕の料理をおいしく食べてくれたときの気分は、言葉では表現しきれないほどです。
僕の本業は音楽ですが、料理は休息です。友人や同僚を集めてパスタパーティーを開くこともできますし、僕が好きなワインを一緒に飲みながら楽しむ幸せな時間。料理そのものが休息です。
シェフのカンタに点数をつけるなら何点?
料理が好きな僕に料理番組出演のオファーが入ってきました。断る理由がありませんでした。そしてこの番組に出演しながら料理についてさらにたくさんのことを学びました。実は、クリームソースパスタやカルボナーラなど、韓国でよく食べるメニューがイタリアに行くとあまりないそうです。韓国風に変わった味だそうです。トマトソースも違う部分が多いですし。イタリア人が主に食べるものは、オイルパスタです。食材そのものの味をそのまま楽しめるメニューがイタリアでは好まれるそうです。
韓国に来て様々なソースが進化しましたが、僕も最初は濃い味のソースをたっぷり使うことが、料理する際により簡単でおいしいだろうと思いました。でも、本当の味はオイルパスタでした。材料もオリーブオイル、白ワイン、よい塩加減の麺にのせるいくつかの海の幸や魚類、そして塩、胡椒だけです。このように味つけしながら料理する過程がとても楽しかったです。
専門的なシェフを除いて、ただ家でパスタを作る人が10人いるとすれば、僕は上位3~4人に入る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僕は料理をするときに、僕なりの哲学もかなり反映させます。辛いものが好きですが、普通使われるイタリアの唐辛子の代わりに僕はとても辛いベトナム唐辛子やチョンヤン唐辛子(普通の唐辛子より辛い韓国産唐辛子)を使います。そうすると風味がかなり違ってきます。そのようなアイデアや哲学を混ぜるのです。専門のレストランは正統派でしょうが、僕はアマチュアなので勝手に料理できる自由を満喫するわけです^^
早く結婚したい。その理由は…?
一番親しい友人ですと、ヘソン、イ・ジフンが挙げられます。でも、彼らはまったく結婚願望がありません(笑) 僕がまだ独身なのは友人の影響が大き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ところが、学校の同級生の中で、早く結婚した友人の一番上の娘さんが、この前小学校に入学しました。27歳や28歳で結婚したらちょうどそれくらいですね。
男の同級生に会うと飲み会で小学校の入学やお金がかなりかかるというような話を聞きます。芸能界では30代半ばでも「いい歳して独身」と言われることはないですが、僕は同級生にもよく会うのでちょっと焦ります。
可愛い子供を見れば僕も父親になりたくて結婚したくなります。あんな子ならどれほど可愛いだろうか、一緒に暮らすことがどれほど楽しいだろうかと思うようになります。20代後半のときは特に結婚願望が強かったです。当時軍隊に行か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さらにそうだったようです。家に帰ったとき僕を待っている人がいて、その人が僕の愛する人ならどれほどいいのだろうかということですね^^ それがもう5、6年前のことです。今は子供のために結婚したいです。
いい人に出会いたいが、環境上の制約が大きすぎる
しかし、僕の生活パターンそのものが番組関連の仕事以外にも色々と会わなければならない人がたくさんいますし、いつもスケジュールがぎっしり詰まっているので、誰かに会うことがとても難しいです。また、音楽の仕事は誰かが側にいると気になってしまってできません。作業室も、レコーディング室も全部家にあるのでそのようなことを考えると結婚が考えられないのも事実です。
作曲しているのに妻が料理をしているとすると、僕の場合かなり気を遣うと思います。「あなた、ご飯食べて」と言われれば、仕事は終わりですね。実際にある時、隣の家から聞こえた犬の吠え声にも感情が冷めたことがあります。
結婚するうえで一番大きな問題は、海外に一度出ると長く滞在するということです。今年はほとんど韓国にいましたが、通常一年の半分は中国にいます。ほとんど中国にいることが多いので恋愛できる環境ではないですね。
僕の些細な日常の話を最後まで読んでくださったNAVERスターコラム読者の皆さん、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いつも一生懸命頑張って皆さんの側にいることができるカンタになります。では、またお会いしましょう。
文:カンタ
KStyle